첸나이에 살때, 망고철이 되면 부장님 한분이 최상급 망고를 한박스씩 돌렸다.
살 빼려고 밥 안먹고 과일요거트 스무디 해마시다 오히려 살이 더 쪘던 나는
이걸 어쩔까 고민하다가 깎아서 말려보기로 했다.
단물이 뚝뚝 떨어지길래 이게 과연 마를까 싶었는데 달아서 그런지 깎아놓은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부터 벌써 꾸덕하게 말라가는게 느껴졌다.
천장에서 돌아가는 팬과 에어컨 24시간 가동으로 며칠만에 잘 마른 망고를 한국 집에 보냈는데,
우리 가족들은 그걸 제삿상에 올렸다고 한다. 귀해서.
사실 내 동료들이 부모님 용돈으로 열심히 돈도 부치고 할때 나는 말린 망고로 퉁친 것이었다.(ㅋㅋㅋ)
22살 때. 내가 이토록 갬성적이던 시절도 있었다.
윗사진은 무려 니콘 fm2 인가? f2인지 하여튼 수동 카메라로 찍은 셀카다.
아래는 아마 디카였을거다.
이 때 수동카메라 1개, 디카 1개, 폴라로이드 1개 이렇게 가져가서 사진을 찍고 다녔다.
지금은 연락 안되지만 꽤 친하게 지내던 일본 친구들이 있어서 만나서 놀았었다.
내가 수동카메라로 찍은 것 중에 아래 유키의 사진이 제일 맘에 든다.
색감이 진짜 좋다.
한국에 놀러와서 한국말 몇개 배워온거 써먹어 보겠다며,
지하철역 퇴근하는 부장님들 보고 그렇게 '아저씨' '아저씨' 불러대던,
커플들 지나가면 '욘인' '욘인!' 이러면서 칭찬 해달라는 듯이 쳐다보던게 귀여웠다.
인도 회사의 구내식당 밥이 정말 잘 나왔다.
세끼가 다 한식이 잘 나왔는데, 문제는 균형을 잘 못 맞추는게 문제였다.
수제비와 잡채와 갈치조림 무엇.
네팔 주방장들이었는데 다 엄청 맛있었고, 내가 밥 시간 지나고 살금살금 식당가서
나 밥 좀 먹을 수 있냐고 하면 겨란후라이를 3개씩 해줬었다.
모든 밥 해주는 사람 마음이 그렇듯, 그 네팔 주방장님도 내가 밥 먹고 있으면 맛있게 먹나
몰래 흘끔흘끔 보는 게 좋았다.
아 여기서 혼자 살 때가 그립다.
여기 정말 깨끗하고 조용하고 좋았다.
폰디체리 살때 케빈 아저씨 없었으면 진짜 힘들었을텐데.
정말 아저씨 덕분에 그야말로 여러번 '덕' 봤다.
한국 음식 해준다고 불렀는데 아니 계란말이 수준이 한심.
아마 저 때 계란이 몇개 부족했는데 사러 나가기 귀찮아서 그냥 한거 같다.
바바라를 위해서 채식음식을 몇개 더 준비했었어야 했는데,
이 때는 약간 예민한 바바라가 이해 안되서 케빈하고 나하고 삐졌었고,
케빈이 사온 초코타르트 왕창 다 먹고 케빈하고 나가서 따로 맛있는거 사먹었었다.
뭐라도 뭐 더 준비할껄. 그 와중에 콩밥이라니. 밥은 왜이렇게 잘했는지.
찜닭에 깨는 또 어떻고. 내가 깨를 샀었던것도 기억 안난다.
인도에서 일 할 때, 극도의 스트레스 받다가 코다이카날로 놀러갔는데 정말 좋았었다.
지냈던 B&B도 너무 좋고 식사도 최고였다.
떠나는 날엔 주인 아주머니가 저렇게 바질 페스토 바른 샌드위치도 싸줬었다.
난 인도의 산악지대 도시는 정말 다 좋다.
이 날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이때 나는 석준이라는 동갑내기 친구랑 파키스탄에서 우연히 만나서 꽤 오랫동안 같이 다녔다.
딱히 같이 다니는게 맞아서 다녔다기보단 그냥 루트가 똑같아서 같이 다녔다.
한달 정도를 같이 다녔는데 그렇다 할 추억도 별로 없는것 같다.
대부분 거의 싸웠고, 담배를 피우는 그 친구가 하루에 3개피만 피우겠다며 담배를 나에게 맡기고
3개피 이상은 절대 내어주지 말아달라고 부탁해서 늘 3개를 다 피워버리고는 한 개피만 더 달라고
애걸복걸하던 애를 말리던 생각이 난다.
파키스탄으로 이란으로 넘어가는 버스에서 내가 짐을 다 털린 일이 있었는데 석준이가 겉으로는
에이그 이를 어쩌겠어 이러면서 위로해주고 샤워하러 들어가서는 휘파람을 휘휘 거리면서 씻길래
난리를 쳤던 생각도 난다. 너는 지금 휘파람이 나오냐며.
하여튼 대체로 싸우고 다녔다. 한번은 얘가 나 열받게 하려고 너무 느리게 걸어서 싸운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너무 안맞아서 내가 시리아에서 이제 그만 따로 다니자라고 선언을 해서 헤어졌다.
같이 다닌 루트가 정말 힘든 루트였고 그런 여정을 한달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로 한번도 연락해본 적이 없는 애는 얘가 처음이다.
2010년쯤인가, 걔가 미국으로 유학 갔는데 너무 외로웠는지 어찌저찌 전화가 와서 통화는 한번 한적이 있다.
그러다 언젠가 옛날 사진을 뒤적거리다가 이란 여행때의 동영상 파일을 하나 보게 됐는데,
거기에 석준이가 뭐라고 하는 소리가 같이 녹음 됐길래 들어보니까 석준 왈,
우영아 저기, 저쪽 가서 서봐, 저기 사진 잘 나오겠다. 라는 거였다.
맨날 싸웠다고만 생각했는데 석준이는 석준이대로 나한테 참 잘해줬었지 싶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얘랑 좋은 추억도 엄청 많았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같이 인디애나 존스4 자막도 없이 보고선 그렇게 좋아했던 일.
이란에서 돈이 다 떨어져서 남은 돈을 탈탈 모아 산 옥수수통조림이랑 큰 빵을 땅바닥에 앉아서 먹었던 일.
유로 2008 같이 열심히 보던 것.
저 위에 사진은 되게 좋은 레스토랑에서 오랜만에 맛있는 밥 먹고 신나서 기분 좋게 웃으면서 들어왔던 날.
석준이가 '작가처럼 사진 찍는거 알려줄까' 하더니 저렇게 사진기를 땅바닥에 놓고 찍으면 된다고 했었다.
에스파한 시오세폴에서는 양아치들이 엄청 시비를 걸어댔는데, 석준이가 걔네들한테 가서 귓속말을 뭐라고
하니까 걔네들이 가만히 있길래 뭐라고 했냐고 물어보니까, 썬오브빗치 라고 해줬다고 해서 웃었던 생각도 난다.
이렇게 쓰니까 옛 생각에 눈물이 날 것 같다가도, 이란 어느 까페에서 너는 니 생각만 쳐한다고
싸웠던 생각이 또 나네.....
네팔에서 ABC까지 올라갈 때.
그 와중에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하는 나.
음악없인 못살던 20대였다.
간지나는 에어팟 미니 레드.
나는 일할 때도 이 '라다'라는 이름을 그대로 쓴다.
저 왼쪽 친구가 바로 그 라다라는 이름을 준 친구.
라다랑 락쉬미 중에 하나로 하면 어떻겠냐고 해서 라다를 골랐던 생각이 난다.
쟤 입장에선 뭐 지현이 태희 이런 느낌으로 제시한 것 같긴한데,
난 라다라는 이름이나 그 이름의 주인공인 여신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 다 마음에 들어서
무척 좋아했던 생각이 난다.
제발 혼자 좀 있고 싶어서 갔던 후쿠오카 여행.
이 날 눈이 많이 와서 비행시간이 많이 지연됐고 결국 후쿠오카에 밤에 도착했다.
짐만 풀고 여기로 밥 먹으러 왔는데 저 사진 속의 왼쪽 아저씨가 내가 먹은 것 까지 다 내주고 가셨다.
아주 유쾌한 아저씨였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입사한 회사에서 노래시킨다고 해서 상욕을 하면서
어떻게 해야하냐고 뿌네맨이랑 애미한테 물어봤더니 알이즈웰 하라고 했다.
진짜 너무 웃김.
옛날에 늦은 시간이었는데 술 취한 여자분이 델리만쥬 사서 막 지하철 기다리는 사람들한테
이거 먹어요. 맛있어요. 이러면서 막 하나씩 나눠줬었다. (ㅋㅋㅋ)
진짜 맛있었다.
그 겨울, 이 궁전을 보고 진짜 가슴이 터질 뻔 했던 기억은 정말 최근 들어 가장 강렬한 기억이다.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난 무조건 러시아는 겨울에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아니 왜이렇게 발이 지저분해보이는지?
조리 신은 부분이 마찰때문에 상처가 생겼었는지 하여튼 참.
골페이스 호텔 진짜 끝내주게 좋았다.
저렇게 침대에 누우면 바다가 보였었는데.
하아. 어디든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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