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호텔이 있는 스트라스부르 시내로 돌아오기 까지 차가 얼마나 막히던지 무척 지루했다.
시내에 도착하면 바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일정이었는데,
묵직한 에클레어를 너무 먹은 탓인지 밥맛도 없고,
하루종일 으슬으슬 추웠던데다 비도 내려서 국물 아니고는 땡기는 것도 없어서 저녁은 안먹기로 했다.
숙소에 먼저 들어와서 좀 더 따뜻하게 챙겨입고 까르푸에 와서 간단하게 이것저것 샀다.
길을 지나가다가 뭔가 익숙한 냄새가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쌀국수집이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가게로 들어가서 쌀국수를 시켰다.
뜨거운 국물이 그립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에서 먹은 쌀국수가 그렇게 맛있었다고
하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정말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걸 시킨것 같은데 질 좋아보이는 고기도 잔뜩 들었고, 무엇보다 국물이 정말
개운하게 맛있었다. 정신없이 한그릇 비우고 계산하는데 주방 아주머니가 나를 어찌나
흐믓하게 쳐다보시던지. 맛있고 좋았는데, 어느새 내가 외국에서 국물이나 찾는 '라떼'가 된것 같아
왠지 좀 서러워졌다. latte is horse.
들어와서 씻고 앉아서 아까 사온 그릇을 찬찬히 구경했다.
별로 맘에 들지도 않는데 그냥 뭐 하나 사서 기분 좋았다.
감자칩 먹으면서 보고서나 써볼까 하고 컴퓨터를 켰다.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 밤인데 이렇게 방에만 쳐박혀 있기엔 너무 아까웠다.
어디가서 술이라도 한잔 해야겠다 싶어서 화장도 안한 맨 얼굴에 자켓 하나 훌렁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다정하게 환영받을 수 있는 작은 술집을 찾기란 진짜 쉽지 않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근데 그 어려운걸 내가 해냈다.
빌빌대며 돌아가다가 뭔가 문이 닫혀있음에도 밖에서부터 느껴지는 '북적거림'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리가 모자라서 입구에서부터 서서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결론 : 여기서 완전 만취
너무 어색했다.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화장했다고 자신 있는 얼굴은 아니지만,(ㅋㅋㅋ)
그래도 맨얼굴이기까지 하니 정말 발가벗은 느낌이 들어 나댈 수도 없었다.
바 자리에는 40대로 보이는 언니들이 있었는데 그 옆에 어색하게 서서 사장님에게 저...저도 한잔만.
했더니 저 귀여운 사장님은 못알아듣고 앞에 있는 언니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 중 한 언니가
통역해줘서 사장님이 제일 좋아하는걸로 한잔 주세요! 했더니, (크래프트 맥주집이었다.)
애정이 가득한듯 흠- 고민을 하시더니 자긴 크리스마스 IPA를 제일 좋아한단다.
라즈베리맛이 강하다더니 정말 산미가 강렬했고, 독특한 맛도 좋았다.
언니들 옆에 서서 맥주를 마시는데 사장님이 중간중간 싱글방글 웃어주기도 하고,
언니들도 계속 말을 걸어주면서 챙겨줘서 너무 따듯한 기분이 들었다.
임주임에게 빨리 여기로 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마지막 밤을 신나게 보낼 곳을 찾았다며(ㅋㅋㅋ)
임주임이 왔고 우린 신나게 마셨다. 임주임하고 내가 둘이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1부터 100까지
다 진행한 회사 창립이래 첫 해외박람회였고, 그 결과가 너무 성공적이어서 우린 축하를 해야만 했다.
바 자리에 앉아있던 언니 2명이 우리를 살갑게 챙겨줬다.
꼭 크리스마스 때 다시 이곳에 오라며, 이곳은 크리스마스때가 정말 아름답다고 했다.
그러다가 한 언니가 완전 정신 못차리게 만취해서 그들은 떠났다.
아마 그 만취한 언니가 사장님을 좋아하는 듯....? 근데 이 사장님은 일부러 모른척 하는 듯...?
아무튼 그런 분위기가 감지됐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로는 연애박사인 타입)
그들이 떠나고 우리가 그 자리에 앉아서 좋다고 웃고 떠들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혹시 한국분이세요? 한다.
여기 현지에서 건축가로 활동하시는 분인데, 여기 펍 직원이 와서 저기 한국인 2명이 왔는데
프랑스어를 못하는 모양이라고 니가 가서 도와줄 거 있으면 도와주라고 해서 와봤단다.
왠지 모두가 우릴 신경안쓰는 척 하면서 무척 신경쓰는 것 같았다.
하 이 따뜻한 기분. 나는 호텔도 코앞이고 일도 잘 끝났겠다 완전 느긋하게 취해있었고,
기분도 좋아서 씨뻘개진 얼굴로 그분과 엄청 떠들어댔다.
도대체 여길 어떻게 알고왔냐고 자기도 여기 살지만 여긴 처음와보셨단다.
한국을 떠나야하나들 한다지만은 한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도 없는것 같다는 얘기도 듣고,
이제 한국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자나라가 된것 같다고, 다만 '졸부'로 인식하는 느낌이
아직은 강하다는 재밌는 얘기도 들었다.
사진 속의 사장님은 우리가 꽤나 맘에 든 모양이다.
몇잔 짼지 기억안나는데 하여튼 또 다른 맥주를 시켰을 땐 자기가 사겠다고 한잔 내어주셨다.
오늘이 첫데이트 같은 저 둘을 바라보며, 어머 쟤네 좀 봐 했다.
이런 동네 맥주집이나 꼬치집(feat. 투다리)엔 저마다 조금은 더 짜릿하고 특별한 추억들이 많을것 같다.
나도 호프집에서 유난히 많이 웃었던것 같다. 내 앞에 있는 남자가 진짜 재미없는 소리를 하는데도
세상 웃겨죽겠다며 배를 잡곤 했었다. 좋아하는데 아무리 이유가 없다지만,
난 정말 다 이유없이 좋아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남자를 웃겼지 나를 웃겼던 남자는 없었다.
아무튼 이쯤 되니 정말 취해서 간다고 계산하고 나왔는데, 저 귀여운 사장님이 급하게 따라나와서는
(말은 안통하지만 대충 느낌으로 보아하니) 우리 프랑스에서는 볼뽀뽀가 인사니까 볼뽀뽀를 해야한다고
해서 격하게(!) 인사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까지 1분 남짓 걸렸으려나, 들어오자마자 나는 자켓만 벗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3초만에 망고잠으로
빠져들었다. 여기가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일주일만에 호텔에서의 특별한 아침이 지루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불평 비슷한걸 속으로만 삼키며 대충 또 뭔가를 떠왔다.
근데 역시 프랑스라 그런지 스크램블드 에그가 정말 맛있었다.
(프랑스 음식은 버터를 많이 쓰니까!!!!!!!!!!!! 무조건 맛있다!!!!)
오전에 원래 유람선타는 일정이 있었는데 우린 안타고 그냥 동네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벼룩시장이 섰다. 대부분 중고책을 파는 가게고,
오래된 포스터를 파는 가게도 있었다.
산책나온 개들이 유난히 길에서 큰일을 많이 보던 도시였다.
막내 여자친구의 추천맛집.
막내가 인턴으로 있던 재작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작년에 직원으로 입사했을 때는
여자친구가 생겨있었다. 그 이후로 막내는 좀 변한것 같다.
(인턴 땐 일을 재밌어했는데 이제는 재미있어하지 않아....)
여기 와서도 막 힘들어했다. 자긴 다신 장기 출장 못올것 같다며, 왜냐니까 여자친구랑 떨어져있는게
힘들어서란다. 그래 오지마...
아무튼 절절한 사랑의 주인공 그녀가 검색으로 찾아내준 맛집이 있다길래 거길 갔다.
프랑스 빵 너무 먹고싶었다.
빵 사자마자 나는 먼저 자리잡고 앉아서 뜯어먹었다.
사실 아침먹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할게 없으니 우린 또 당충전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보니 왜이렇게 우리들은 에끌레어를 먹었을까.
여러 디저트가 있다면 그 중 꼭 들어갈 게 1. 에끌레어 2. 밀푀유 이긴 하지만. (ㅋㅋㅋ)
빵 몇개 더 샀다.
뉴요커 가방에 프렌치 빵 담기
한국에선 이제 별 인기 없는 아가타가 아직 프랑스에선 종종 매장이 보인다.
안그래도 뱅글 하나 사고싶었는데 우연히 저 디자인이 눈에 띄어 매장에 들어갔다가 샀다.
이제 점심 먹고 공항으로 출발한단다.
이제는 정말 집에 가고싶은 마음이다. 완전히 푹 지졌다.
한국분이 운영하는 한식당이었는데 무척 맛있었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정말 같이 있던 어르신들 진짜 뭐가 그렇게 말들이 많으신지.
진짜 짜면 짜다 싱거우면 싱겁다. 한 10번쯤 듣다가 기가 빨려서 에어팟 낄뻔.
나도 맨날 그런말 하니까 이해는 하는데, 이분들의 문제는 그걸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려고 한다는 것.
한국인 사장님이 겨우 우리자리에 도달(!)하여 지친 얼굴로 맛있게 먹었냐고 물어보셨을 때,
나는 정말 맛있었다고 했다. 아니 그리고 진짜 맛있었다.
아까 산 빵 하나를 꺼내먹으며 무료 GQ 잡지로 눈요기를 했다.
MEN OF THE YEAR 2019 라니욧!
드디어 비행기 탑승. 이 비빔밥만 한번 더 먹고 나면 이제 드디어 집.
탄산수가 없다고해서 진저에일로 마셨다.
내 30대 인생에서 무척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출장이었다.
아마 두고두고, 이 때를 얘기하게 될 것 같다.
+ 잘 지내셨지요?
저는 잘 지내고있어요.
코로나때문에 난리라지만, 전 이걸로 너무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물론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나 노인분들한테는 위험하겠지만 그게 아닌 경우,
경미한 증세로 쉽게 완치가 된다고 하니 너무 불안해 휩싸이진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말이에요.
(내가 걸려서 회사가 폐쇄된다거나 하는 것들이 오히려 걱정임.)
마스크 같은 경우도 환자의 경우가 아니고, 예방의 목적이라면 큰 효과는 없다고 하던데.
(예방차원에서 마스크를 쓰는거라면 안경도 같이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흑)
하지만 이번일을 계기로 위생관념이 많이 철저해질 것 같아서 다행이고,
그리고 신천지의 문제점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어서 정말 그건 잘됐다고 생각해요.
종교에 빠져서 부모님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많은 아들딸들이 다시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저는 내일 연차입니다.
오늘 업무 끝나고는 임주임과 김부장과 오뎅바에서 술을 마실거라서 오랜만에 기분이 좋습니다.
+++ 그래도! 건강 유의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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