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브랜드의 옷을 좋아한다.
회사 근처 쇼핑몰에 이 브랜드가 입점해 있어서 퇴근해서는 거의 매일 들르다시피 하고,
분기별로 한두개씩은 무조건 사고, 세일 때는 세일하는 날 연차내고 매장 문 열자마자 들어가서
맘에 들었는데 제 가격 주고 사기 아쉬웠던 것들을 매의 눈으로 훑어보는 정도.
이사 후로는 매장에 자주 못가지만, 그보다 요새의 코스는 너무 난해해서 세일 해도 사고싶은게 별로 없다.
하지만 독일 코스가 한국에 비하면 가격이 꽤 저렴해서 세일 때 독일코스에서 쓸어버린다.
왜 오른쪽에 구운 빵은 저렇게 테이블매트에 내 팽겨쳐뒀을까.
훈제연어가 의외로 맛있었다.
우리 부스가 있는 곳은 9홀.
전날 그렇게 엉망이던 전시장은 밤새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놀라울 정도였다.
첫날은 정말 정신이 없었다. 첫날 제일 많은 손님이 몰려들긴 하지만, 9시 30분인가 전시가 시작되었다는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그야말로 손님이 밀려들었다.
2명의 동료들이 있었지만, 제품 관련해서 상담이 가능한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한팀 이상 상담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미리 잡아놓은 기 거래 업체들과의 미팅 + 내가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업계사람들의 독려방문
(내가 우리 부스 연다고 호들갑을 왕창 떨어놨기 때문에 ㅋㅋㅋ) 으로 엄청나게 정신 없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밥 먹은 이후론 먹지도 못하고 말은 많이 했더니 힐 위에서(멋 부릴려고 힐도 신음)
머리가 핑 돌기까지 하는 경험을 했다.
에티오피아 프로젝트가 어그러지고 나서는 나는 우리 바이어 잘못도 아닌데 바이어한테 화가 났다.
이 프로젝트가 어그러진건 정말 의외의 일이었다.
왜냐면 한국에서 일정이 끝나고 나서 결과나 분위기가 무척 긍정적이었기 때문.
오죽하면 끝나고 우리 바이어(이하 E)가 나한테 전화했을 때 나는 흥분해서 '나 완전 진짜 잘했어!!!!!!'
이렇게 소리소리를 질렀고, E도 흐믓한 목소리로 그래 잘했어, 잘 할 줄 알았어. 라며 격려해줬다.
(아주 드라마라도 찍을 듯한 말들을 주고받았었음)
아무튼 별 문제 없겠거니 했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고, 나는 애꿎은 바이어한테 화가 났다.
내가 한국에서 잘 했으면 거기서는 니가 잘했어야지!!!!(부글부글) → 물론 속으로 한 생각.
결과를 통보 받은 이후에 이렇다 저렇다 정리도 없이 가만히 있다가 든 생각이 그래도 마무리는 좋게 하자 싶어서,
결과가 이렇게 되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다시 같이 일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그 날 퇴근길에 전화가 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냈냐고 묻는게 한대 패고싶을 지경이었다.
너한테 미안해서라도 이번에 독일 가야겠다. 너네 부스 내가 꼭 방문할께. 라고 말하는데,
그 전 같았으면 뭔가 같은 사업에 묶여있다는 연대감과 고객에 대한 충성심으로 뛸 듯이 기뻤겠지만,
이제 E는 더이상 내 고객이 아니었다.
대충 알겠노라고 대답하고, 나는 무려 시금치 사느라 바쁘니 끊자고 했다.
그렇게 몇달 에티오피아 프로젝트의 충격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가고 드디어 출국하기 하루 전날.
E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독일에 언제 도착하냔다.
이제 E에 대해선 억울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 프로젝트는 우리 잘못이었다.
하지만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는건 기대가 없다는 뜻이고,
기대가 없다는건 E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없다는 뜻이었다.
언제언제 도착한다고 하길래, 속마음을 감추려고 과하게 반응했다. 오 진짜? 완전 좋네.
전시기간 동안 꼭 저녁 한번 먹자길래, 좋지 좋지 완전 좋지.
그랬더니 눈치가 귀신같은 E는 무슨 말을 고민하는지 메신저 입력창에 한참을 '입력중'이 떠있다.
나는 그때 짜장면을 먹고 있었는데, 한참을 먹고 나서야 띠링 메세지가 도착해서 보니.
'우리 아직 친구 맞지...?' 란다.
아이씨 진짜. 사람 미안하게. 그래 어제의 비지니스 파트너가 오늘의 친구가 되지 말란 법은 없지.
생각해보면 그래도 E와의 추억이 꽤 많다.
종각에서 우린 찜닭을 먹고, 광화문 뒷골목에서는 말도 안되는 허름한 홍탁집에서 소맥을 마셨더랬다.
마드리드에서는 스테이크랑 왕토마토를 먹으면서 우리 프로젝트의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중간중간 일이 안풀릴 땐, 난 새벽에도 전화를 걸어서 빽빽거렸다.
'이 프로젝트는 다 망했어. 하 너는 지금 내가 얼마나 좌절스러운지 1도 몰라!!!!!'
아마 E는 나같은건 손바닥 안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불쌍한척 우리 아직 친구 맞냐고 하면 내가 금방 마음이 약해져서 자기와의 추억을 저렇게
곱씹을걸 다 알고있었을 거다. E의 예상대로 나는 아련해져서는 구체적인 답장을 했다.
'6일은 빼고! 그날은 저녁 약속있으니까!'
전시 첫째날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자세한 약속은 자기가 우리 부스에 들를테니 그때 정하자고 한다.
정신없이 상담하고 있는데 눈길이 느껴져서 쳐다보니 E다.
E가 아버지와 함께 왔다! 처음 서울에서 E를 만났을 때도 그는 아버지랑 함께 있었다.
그는 한마디로 sweet old man이었다. 그를 보면 난 내 친할아버지처럼 어리광을 떨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사업적으로는 얼마나 빠삭하고 보통이 아닌 노인네일지 느껴지는 그런 눈빛이 있었다.
E보다 그의 아버지가 온 것이 더 반가웠다. 그를 보면 뭔가 존경심같은 것이 솟아올라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진심을 담은 인사를 하고싶게했다.
내가 인사를 하고 나니 내 손을 꼭 잡으시며 이번 프로젝트는 정말 안타깝게 됐다며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와씨 정말 너무 감동적이었다. 에티오피아 프로젝트에 대한 아쉬움과 서운함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자리로 모셔서 차를 내드리는 동안 E랑 인사를 나눴다.
이따 저녁에 에티오피아 식당에 데리고 가겠단다. 호텔 로비에서 7시 30분에 보잔다.
끝나고 시간이 남아 호텔 앞에 있는 쇼핑몰 DM에서 좋다는 화장품을 휩쓸었다.
내 동료직원은 발포비타민을 왕창 사는 모양이다.
저날 저 DM에 인기많은 제품들이 다 품절됐다고 들었다. (중국인들이 엄청 사갔다고)
정확히 7시 30분. 나 지금 로비야 라고 문자가 와서 내려가 보니 E가 앉아있다.
전시 첫날,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공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동료들도 뭐랄까 말하자면 세계 경제를 책임지는 무슨 글로벌 인재라도 된 것 같은 느낌에 취했다.
부스도 맘에 들고, 오랜만에+처음 만나보는 수준높은 손님들(진짜 물건 살 사람들)과의 상담도 좋았다.
이제는 좀 느긋하게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하면서 놀기만 하면 되는 시간이었다.
사실 에티오피아 프로젝트 관련해서 E와 한번 풀기는 해야했다. 할 얘기가 많았다.
한국에 왔던 에티오피아 남자 중에 한명이 우리 직원 한명한테 홀딱 반해서,
다음날 부터는 일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밤에는 나한테 '그녀가 자기를 녹여버렸으며, 그거때문에 자기가 얼마나
미칠것 같은지'에 대한 메세지를 한국에 머무는 내내 보냈던 사건이 있었다.
그 새끼는 지맘대로 어떻게 안되는걸 어쩌지 못해 지랄 발광이었다.
하라는 일은 안하고 구석탱이에서 몸만 비비 꼬고 있거나, 보다못해 내가 좀 일어나라고 하면 입을 삐죽대면서
잠깐 일어났다가 다시 앉기를 반복했다. 그 개새끼는 밥 처먹을 때만 열심히 였다. (생각할수록 열받음)
그 당시 나는 E에게 바로 일러바칠 수도 있었지만, 아니 사람이 사람 좋다는데 그걸 가지고 그러지말라고
말한다는게 유치하다고 생각됐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면 이게 우리한테 유리하게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 같은게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밤마다 오는 그 메세지를 대충은 다 받아주었고, 우리 직원은 거절의 순간이
다가오지 않도록 다 알면서 전혀 모르는 척 친절하게 대해주느라 애를 썼다.
결국 그 새끼는 마지막날 무려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우리 직원에게 고백했고, 우리직원은
'나는 지금 남자친구가 있어. 너가 나보다 더 좋은 여자 만나길 바라' 라며 나이스하게 마무리했다.
그러나 그 새끼는 끊임없이 메세지를 보내왔다.
그 놈 왈,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을 어쩔 수가 없어. 메세지라도 보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
참 부지런한 병신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갑'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시달리면서 이런게 진짜 악질적인 성희롱이구나 싶었다.
그 새끼는 자기가 갑이라는걸 알고 있었고 그걸 아주 잘 이용하고 있었다.
결과가 안좋게 되었을 때, 그래서 분노가 더 극도에 달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결과가 통보됨과 동시에 더이상 우리에게 메세지도 오지 않았다.
나는 눈알까지 빨개져서 길길이 날뛰었다.
얘가 속한 단체장에게 모든 메세지와 사진들을 캡쳐해서 메일을 보내려고 했다.
근데 정말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미운정도 정이라고 내가 만약에 메일을 보낸 것을 계기로 걔가 내가 원한(!) 처벌보다
더 심한 처벌을 받게 될 것도 걱정이었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과연 에티오피아라는 나라가
이 사건을'문제'라고 받아들일 수준이 되냐는 것이었다.
내 결론은 'NO'였다.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문제 삼을 수 있지만, 끊임없이 우리에게 메세지를 보내고,
몰래 사진을 찍고 한것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생각해보면 불과 5~6년전 우리나라만 해도, 이성을 두고 10번 찍어 안넘어 가는 나무 없다며 계속
구애하거나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강제로 키스하거나 하는 일들이 흔했으니까.
E가 가까우니까 걸어가는게 어떻겠냐고 해서 걸었다.
걸어가면서 그 병신에 대해서 모든걸 다 얘기했다.
왜 자기한테 얘기 안했냐고 하길래 내가 그걸 너한테 얘기해서 뭐하겠냐고 했더니,
내 작아진 모습에 잘난 보호본능이라도 생기셨는지 나보다 더 분해한다.
걔 완전 사랑에 빠진 15살짜리 같았잖아 하니까 마구 웃더니 무슨 말인지 완벽하게 정리 됐단다.
나도 웃었다.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동안 나한테 개인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회사일은 어떤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식당에 도착했다.
에티오피아 사업을 진행 하면서 이 나라에 대한 관심도 무척 커졌던터라 무척 기대됐다.
E가 알아서 주문했고 잠시 후 저런 음식이 나왔다.
저 폭신폭신한 매트같은게 인제라라는 에티오피아의 쌀밥같은건데, 테프라는 곡물로 만든단다.
저걸 손으로 뜯어서 인제라 위에 있는 각종 반찬을 싸먹는 것.
시큼한 맛도 모양도, 먹는 방법도 인도의 이들리나 우따빰과 너무 흡사해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아니 거부감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맛있었다. 한동안 계속 먹고 싶을 정도로.
배가 부르도록 먹고 근처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바에 갔다.
바는 꽤 근사했고, 바텐더들도 본격적으로 보였다.
메뉴판을 주길래 메뉴판에서 맘에 드는걸 시켰다.
나는 무려 'I'm pear, you're apple' 을, E는 'Britain's prince' 를 시켰는데. (이름부터 망삘이긴 하다.)
저런 다이소에서 팔 법한 잔에 칵테일이 나왔다. 나도 상당히 놀랐지만, E는 더 흠칫하는 눈치였다.
얼마나 놀랐는지 나는 속으로 '이거 인종차별아냐?' 라는 생각까지 했다.
내가 저 유치한 사과잔을 들어 조심스럽게 칵테일을 마셨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이 끼친다.
주변을 둘러보니, 행인지 불행인지 심지어 어떤 사람은 선인장 모양 잔에 든걸 마시고 있었다.
이름처럼 달달한 술이었다. 썸타는 사람들용 칵테일인가본데.. 나한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떫은 맛의 와인 한모금이 차라리 간절했다.
E가 체념했단 듯한 몸짓으로 저 해골바가지를 들어 한모금 마신다.
그러더니 말해봐, 너 왜 오늘은 다른 때랑은 다르게 편안해 보이는건데? 란다.
난 진짜 안되나보다. 난 정말 매번 똑같이 행동한 것 같은데 말이다.
너는 이제 내 고갱님이 아니잖아. 했더니 진짜 그게 다야? 란다.
개수작부리기 전에 일어나자 싶어서 그만 가자고 했다.
눈치 빠른 E는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질척거리거나 졸라대는 법이 없었다.
계산을 마치니 이런 샷을 내어준다. 굿바이 샷인지 염병인지.
왜 이런 멀쩡한 잔을 놔두고 저런걸 쓰는걸까.
분위기나 바텐더만 보면 꽤나 세련되서 저런 잔을 쓰는걸 오히려 용납 못할 것 같은 느낌인데 말이다.
바에서 나와 E와 안녕하고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님이 올해는 이상하게 날씨가 춥지 않다고 한다.
방에 들어가니 동료가 손을 모으고 잠이 들어있다.
깰까봐 조심조심 씻고 나도 기절하듯 잠들었다.
5시 즈음 되니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일어나서 대충 준비하고 나가서 조식을 먹었다.
첫째날 너무 고생한 우리는 둘째날부터는 샌드위치랑 샐러드, 그리고 초코렛이며 주전부리를 왕창 사갔다.
그런데 둘째날은 첫날보다는 덜 붐볐다. 그래도 우리는 중간 중간 끊임없이 초코렛이며 젤리를 입에 넣었다.
첫날이 어지간히 힘들었었나보다. 파장시간이 다 되니 손님이 많이 줄어서 샐러드도 먹었다.
드디어 둘째날도 종료.
이 날은 우리와 각별한 홍콩 거래처와 저녁식사 약속이 있는 날.
전시장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스타벅스 들러서 커피 한잔 마셨다.
아 맞다. 스타벅스의 레드컵이 독일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다 별볼일 없었다.
꽤 오래전에 그냥 진한 빨간 컵이 레전드가 아닐까 생각된다.
(난 우리나라도 당연히 하겠거니 했더니 우리나라는 안한지 몇년 됐단다.)
전시장에만 내내 있으니까 좀이 쑤셔서 끝나고나면 오히려 걷고싶다.
그래서 한 2.5km 정도 떨어진 식사 장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라인강도 건너고 별것도 아닌 것에 깔깔 웃으면서 걸었다.
지나가다가 너무 따듯해 보이는 가정집을 봤다. 저런 창문에 커튼, 주황 불빛만 보면
저긴 누가 사는지 어떤 사연들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가 대접해야 하는 저녁식사 자리여서 내가 식당을 예약했다.
독일의 전통음식을 먹을 수 있으면서 너무 비싸지 않고, 캐주얼하면서 전통이 있는 그런 식당을
찾느라 힘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찾아낸 몇 개의 식당에 전화를 해서 예약했더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다 full booked 란다.
미슐랭 별 받은 레스토랑도 아니고, 시간도 2주나 더 남은 상황이었는데도 꽉 찼다니.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내 모든 고려사항을 만족하는 레스토랑 발견.
전화했더니 가능하단다! 이름이 뭐냐길래, 라다라고 하면 분명히 못 알아들을거고
R.A.D.H.A 라고 일일이 불러줘야 하는게 귀찮아서 제니퍼라고 했더니 바로 알아듣는다.
제니퍼를 선택한 것은 그냥 쉬운 이름이라서.
슈니첼이나 뭐 여러 다른 메뉴도 많았지만, 우리는 그냥 모둠을 시켰다.
유명하다는 애플와인하고 맥주도 마셨다.
우리랑 꽤 친한 거래처여서 신나게 웃고 떠드는데 저 멀리서 누가 걸어오는게 보였다.
이런. 전직장 회장님과 나에게 끊임없이 치덕대는 러시아 돼지였다.
웃긴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서로 얼키설키 아는 사이들이어서 제각각 인사를 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민망한 순간이었다.
저녁식사를 하니 9시 30분쯤 됐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들어가는데 다른 아는 사람이 빨리 오라고 난리를 쳐서,
난 그 친구들이 있는 바에 가서 몇 잔 더 마시고 숙소로 돌아왔다.
시간도 엄청 늦은데다가 정말 너무 피곤해서 씻을 엄두는 내지도 못하고 옷만 겨우 벗고
침대로 들어갔다. 화장도 안지우고 자보는건 정말 처음인 것 같다.
드디어 전시 마지막 날.
오늘은 4시쯤 전시를 마치고 바로 프랑크 푸르트 중앙역으로 가서 떼제베 타고 스트라스부르로 이동한다.
빵을 잔뜩 사서 전시장에 들어갔다. 전시 시작하기 전에 일단 빵을 먹었다. (ㅋㅋㅋ)
다른 회사 직원들이 왜 전시장에서 조식 먹냐고 놀렸다.
저 사람, 수트에 아디다스 스탠스미스가 꽤 잘 어울렸는데 사진은 짧게 나와서 아쉽다.
미팅도 해야하고 예의도 차려야 하니까 구두를 신고있는거지,
많이 걸어야하기 때문에 전시회에서는 사실 구두보다는 편한 운동화가 최고다.
아무튼 저 사람은 스타일도, 편안함도 둘다 잡았다.
내 손님 중에 저런 사람있었으면 내가 간도 쓸개도 다 내줬을텐데.....
스트라스부르(Strasbourg)까지 TGV 를 타고 가기로 했다.
TGV는 처음 타보는거라 기대됐다.
기차 시간까지 많이 남아서 까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진짜 핵쓰레기같은 커피였다.
까페 바닥에 비둘기가 엄청 돌아다니고 있었다.
발 아래 손님들이 떨어뜨린 빵 부스러기 같은 걸로 먹고 사는 놈들인가보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옆에 앉은 어떤 독일 아저씨가 너네 전시회 왔던거지? 라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니까 자기도 그렇다며, 서울에 몇번 가봤다고 한다.
독일 프랑크 푸르트에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까지는 약 3시간 정도 걸린단다.
대부분 프랑스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방송도 프랑스어로 했다.
타기 전에 가이드분한테 여권 챙겨놔야 하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해서 편하게 있었는데,
중간쯤에 역무원 아저씨가 오더니 여권을 달라는게 아닌가.
여권이 가방에 있긴 했는데 어디 있는지 몰라서 잠시 시간을 들여 찾아야했는데,
누가 들어도 지랄하는게 분명한 불어로 그야말로 생지랄을 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고 그랬더니 영어로 자기가 2~3분 후에 올테니 그때까지 반드시 찾아놓으란다.
정말 엄청 불쾌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인종차별 같은걸 별로 당해본적이 없는데,
이번 출장에선 좀 유난했다. 말은 안했지만 저 위에 소세지집 종업원도 정말 싸가지가 없었다.
아무튼 여권을 찾아서 테이블 위에 올려놨더니 와서는 여권 달라길래, 눈짓으로 테이블을 가르켰더니
'펴줄래?' 란다. 그래서 군말없이 펴줬다...
3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이동한 것 뿐이지만, 확실히 프랑스라 그런지 느낌이 다르다.
도시도 더 아기자기하고, 사람들도 세련된 것 같다.
저녁을 먹는 식당에 도착했다. 내가 고른 에피타이저는 양파 키쉬.
아 음식도 훨씬 더 풍부한 맛에 섬세한 느낌이다.
키쉬가 맛도 진한데다가 양도 꽤 많아서 난 솔직히 키쉬로도 충분했는데 아직 남은 음식이 많았다.
엄청 오래 푹 조려냈을 것 같은 족발이 나왔다.
짭잘한 양념이 장조림 같은 맛이다.
그래 확실히 음식도 그렇고 프랑스는 다르다니까.
디저트는 3가지 중에 고를 수 있었는데, 1. 치즈 2. 사과케이크 3. 샤베트
외국사람들이 치즈에 크래커를 디저트로 먹는다는 걸 알고 있었던터라 난 사과케이크를 골랐는데,
다른 사람들은 치즈라고 하니 치즈케이크를 떠올리며 많이들 치즈를 시켰다.
그랬더니 사진 왼쪽에 보이는 저 치즈덩어리가 덜렁 나왔고, 한국인 입장에서는 엄청 진한 맛의 치즈여서
다들 못먹었다. 사과케이크는 작은 조각 케이크 정도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저런 유난스러운 것이 나와서
다들 부러워했다. 플랫브레드에 가벼운 맛의 치즈를 바르고 그 위에 달달한 사과를 얹어 구웠는데 정말
맛있었다. 내가 다 나눠줬다.(관대)
스트라스부르 시내에 있는 호텔이었다.
프랑크푸르트 호텔에 비하면 많이 작았지만 엄청 힙하게 꾸며놓은 그런 호텔이었다.
침대가 엄청 푹신하고 좋다. 푸욱 자기만 하면 되는 밤이다. 좋다.
+ 잘 지내셨지요? :)
오늘 2019년 마지막 날이네요.
저는 아무 계획이 없습니다. 내일부터 5일까지 쉬는데 푹 자고 등산 몇 번 가고 그렇게만 보내도
성공일 것 같아요.
++ 2019년 최고의 선물은 공수처법 통과 같아요.
2020년도 힘들겠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점점 더 나아가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도 많이 받을게요. 아니 받아야해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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